이영림 한의학 박사는 이란으로 건너가 18년간 왕실 주치의로 활동했던 여성 한의사입니다. 골든 핑거(황금 손가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뛰어난 한의술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이영림 박사의 프로필, 고향, 학력, 주요 경력, 한의사 이야기, 저서, 재산 1,300억 기부 등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영림 프로필
- 본명: 이영림
- 직업: 한의사
- 나이: 만 83세 (1941년생)
- 고향: 경상북도 청도
- 학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 졸업, 이란 파라(Fahra) 대학 신경외과 의학 박사
- 주요 경력: 이란 타지리지 메디컬 센터(왕실 병원), 서울 영림학의원 완장, 서초 안보 포럼 이사장, 국가미래포럼 이사장, 효애 실천 회장, 대한 여한의사회 명예회장단 회장
- 저서: 골든 핑거: 신이 내린 한의사, 이영림 박사의 한방 건강이야기
이외 키, 몸무게, 혈액형, 남편 등의 가족 사항, 프로필 정보는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영림 한의사 이야기
경희대학교 한의대를 졸업한 이영림은 졸업 후 한국에서 한의원을 운영하였습니다. 이영림 원장은 한국에서도 전국에서 명의로 소문이 나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대사가 내원했다고 하며 그중 주한 이란 대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란 대사가 불편했던 곳은 견비통(어깨 부분이 아파서 팔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신경통)이었습니다. 이영림은 이란 대사에게 침만으로 10회차 치료를 하였고 이란 대사는 완치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허맥 많으나 이란 사람들은 실맥(가볍게 짚어도 힘 있게 뛰는 맥)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침이 잘 들어 이란 대사를 쉽게 치료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치료에 만족감을 느낀 이란 대사가 이란에 한의술에 대해 보고를 처음으로 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이란 대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중 대사가<백색혁명>이라는 책을 들고 이영림 한의사에게 한국어 번역 요청을 합니다. 참고로, <백색혁명>은 제2대 국왕 '마하마드 리자 샤 팔레비'가 이란의 근대화와 서구화를 주도한 개혁 정책을 담은 책입니다. 이영림은 '내가 번역사도 아니고 해당 분야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왜 나한테 부탁을 하는 것인지 의아하다.'라고 생각했지만 곧장 경희대 신상주 교수에게 찾아가서 공동 번역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백색혁명> 책을 번역 출판 후 이란으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국왕에게 초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회가 되어 1976년 9월, 이란 땅을 처음 밝게 됩니다. 공동 번역에 참여했던 신 교수는 함께 가지 못했지만 이영림 박사에게 '이란이 잘 사는 나라다. 거기서 돈을 벌면 좋겠다. 우리 경희대학교에서 한방과 양방을 협력하여 노벨상을 받아보자.'라고 권면하였다고 합니다.
1개월간의 체류 일정을 보내기 위해 200달러를 들고 떠났던 이란은 우리나라와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부유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란에는 길거리에 버려지는 차들이 많아 '고물로만 한국에서 팔아도 먹고살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곤 합니다. 또한 이란은 우리나라와 달리 의료보험 제도가 갖춰져있었으며 관공서 임원급 중에서도 여성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했던 것입니다.
체류 일정 중 이영림 박사는 국립(왕립) 병원에 방문하게 됩니다. 당시 병원의 원장이 이란 정부에 차관이었다고 합니다. 이영림과 함께 차를 마시던 중 국립 병원장이 '이란 사람들이 주로 겪는 미그렌(담궐두통)이라는 병은 아무도 못 고친다. 원인 모를 두통과 어지름증을 앓는 이란 사람들이 많다. 저도 이걸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선생님이 고쳐줄 수 있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영림 한의학 박사는 병원장을 진맥 후 침을 놔주었다고 합니다. 총 7번의 침을 맞은 이란 왕실 병원장은 '이제 그만 맞아도 되겠습니다. 이미 다 나았습니다. 침을 맞을 때 박하사탕을 먹는 것처럼 시원했습니다.'라고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국왕과 병원장의 권유로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이 일을 계기 삼아 왕실 병원 주치의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영림 박사는 담궐두통 환자만 하루에 100명 이상을 치료했다고 합니다. 환자가 너무 많아서 교통순경이 와서 진찰 차례를 정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영림 박사는 어느 정도 이란 생활이 적응될 때쯤 '이란에서 다른 일을 해볼까.'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란 의사는 오전 근무(7~13시)만 하면 되기 때문에 오후 비는 시간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후에는 건설 사업자로 활동했다고 하며 한국인 450명, 현지인 2,000명을 고용해서 크게 건설업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란의 이슬람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혁명 1세대로 불리는 제5대, 6대 대통령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1934-2017)>이 이영림이 근무하던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환자와 의사로 만나게 됩니다. 대통령의 요청으로 라프산자니의 아내를 치료해 주면서 대통령의 큰 신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이영림이 손만 대면 낫는다.'라고 하며 '골든 핑거'라는 별명이 생기게 됩니다. 1994년, 18년의 이란 생활을 마치고 '내 뼈는 고국에 가서 묻어야겠다.'라는 생각에 마침내, 한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이영림 경희대 1300억 기부
이영림은 연구소를 짓겠다는 꿈을 가지고 금산에 40만 3천 평의 땅을 사게 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연구소를 짓는 것까지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에 기부하면 후학 양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고 합니다. 이에 이영림은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남은 인생 더 나누며 살겠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목표로 했던 것은 노벨상을 타는 것이었는데 우리 후배들이 탔으면 좋겠다.'라며 소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영림은 한의학의 세계화, 한방과 양방의 공동 연구, 협진과 발전을 위해 모교인 경희대학교에 무려 1,300억을 기부하며 큰 귀감을 주었습니다.
이영림 TMI 및 여담
- 이영림 박사가 치료했던 담궐두통이란 담으로 인하여 생기는 두통을 뜻하는 한의학 용어입니다. 기운이 없고 어질어질하며 속이 메스꺼운 증상이 동반되는 질병입니다.
- 이란의 팔레비 국왕은 담궐두통이 없었다고 합니다.
- 이영림 박사는 이란에서 뜸, 탕약은 하지 못했고 오로지 침만 놨다고 합니다.
- 이영림이 이란에 있을 당시 중국 한의사가 5명이 있었으나 중국 한의사에게는 환자가 거의 없어 3개월 만에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영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출연
2024년 1월 10일 (수) 20시 45분에 방송되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이영림 박사가 출연한다고 합니다. 이영림 박사는 이란 국왕 팔레비와의 에피소드를 들려줄 것으로 보여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이란 왕실 파티에 대해서도 언급하여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MC 유재석의 질문에 재치 있게 답변하는 이영림 박사의 모습이 포착되어 시청자들이 폭소하기도 했습니다. 이슬람 혁명의 역사적 인물이 병원에 입원하여 일어난 흥미진진한 에피소드, 살아있는 세계사를 들려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대학 기부에서 개인이 기부한 금액 중 가장 큰 금액을 기부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준다고 합니다.
이상으로 이영림 한의사의 프로필, 학력, 저서, 고향, 나이, 1300억 기부, 유퀴즈 출연 등에 대해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란의 난치병이던 담궐두통을 침술로 고치고 한의학을 소개한 한의학 박사 이영림 님의 앞길을 응원하며 앞으로도 병을 고치는 의술을 넘어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인술을 펼쳐주시고 한의학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에 힘써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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